작성일 : 09-02-28 14:00
드라슈타(drashta)는 누구인가? ― 1999년 12월 강가 다르산
 글쓴이 : 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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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슈타(drashta)는 누구인가?


 여기 우리 각자는 몸과 마음이 어떠한가를 주시하고 있다. 이는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니며 치타(chitta)라는 의식이 된다. 우리 수련은 감각이며 이 수행으로는 목격자 주인공 드라슈타를 알아차릴 수 없다. 바라보는 자 주인인 스스로를 알아 드라슈타가 되기 위해서는 완전히 스스로로 남아야 한다. 재수련의 과정을 우리는 요가에서 ‘ 마음의 재조정’ chitta vritti nirodhah라 한다. 마음의 불협화음이 완전히 소실되었을 때라야 주인공을 알아차리고 실현할 수 있다.

 관(觀)하는 자, 드라슈타는 “ 나는 내가 무엇을 하는지를 볼 것이다. ” 라고 말하는 당신자신의 식(式)이 아니다. 이에는 두 가지 핵심이 있다. 하나는 마음으로 이는 관측의 힘이 있고 목격자가 될 수 있음이다. 다른 하나는 드라슈타로 내면의 마음이다. 당신이 우리 명상을 해가면 우린 스스로 우리가 생각도 관측할 것이고 감각적 상호작용, 몸과 마음에서 일어나는 바를 말하게 된다. 이에 우리는 스스로를 바라보는 마음의 힘을 우리는 사용함이다. 이것이 인식의 처음 단계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수준에 머물러 있다. 그러나 참 주인공은 마음에 거(居)하는 것이 아니다.

 참 드라슈타는 정신이다. 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될 수 있다. 당신이 차를 가지고 있다. 이는 몸이다. 이에 운전수가 있다. 이는 마음이다. 그리고 손님이 있다. 이것은 정신이다. 손님은 차를 직접 운전하는 것이 아니다. 차는 운전수 없이는 갈 수 없다. 아믕은 몸을 운전하고 이는 기어, 브레이크, 악세레이터, 클러치, 오름 바퀴 등을 활용하는 책무가 있음이다. 만일 운전수가 말하기를 “ 나는 나 자신을 알 것이야 ” 라고 한다면 마음이 “ 나는 나 자신을 알 것이야 ” 라고 하는 것과 같다. 이것이 드라슈나의 한 수준이다. 당신이 다라나(dhrana)에 이르기 전까지는 이러한 드라슈타는 당신과 함께 할 것이다. 당신이 감각을 그치는 프라티아하라(pratyyahara)와 다라나를 넘어서면 참 드라슈타는 명상과 삼매(三昧)속에서 모습을 보인다. 이러면 곧 당신은 승객이 차가 움직이는 것을 알게 되고 운전수가 브레이크 등을 밟는 것을 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기에 잘 인식하는 승객 또한 일어나고 있는 일체의 증거인이 되고 승객도 운전수와 마찬가지로 인도자가 될 수 있는 바이다.

 일반적으로 당신이 택시를 타면 곧 운전수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그러나 당신은 어디로 가는지 알지를 못한다. 운전수는 곧 바로 갈 수도 있고 우회하여 갈 수도 있다. 이제 당신 상황이 곧 그러하다. 당신은 마음에게 말한다. “ 이봐 여기 주소 있어. 거기에 데려다줘 ” 마음은 당신을 직접 질러 또는 돌아서든 데려다 준다. 때로 길이 너무 멀어 당신은 악몽 속에서 헤매이다 삶을 허송세월하고 만다. 때로 아주 짧아 갑자기 당신이 거기에 와 있음을 알게 된다. 정상적 삶에 있어 주도자는 마음이다. 다라나를 넘어 명상과 삼매에 있어 승객은 말한다. “ 나는 당신이 나를 먼 길로 데려가고 있음을 알아요. 그러나 난 빨리 가고 싶어. 나는 길을 압니다. 우리 그길로 갑시다.” 이것이 참된 드라슈나 곧 영성(靈性)이다.


                                    ― 1999년 12월 강가 다아샨 ―



 침묵

             스와이 시바난다 사라스와티의 가르침 중에서


 삶의 목표는 침묵이다. 침묵은 신 또는 브라만의 언어이다. 평화는 침묵이다. 침묵은 가슴의 언어이다. 침묵은 현자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