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08-01-31 10:55
인도 요가수행 후기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3,912  
2004년 12월 7일 이른 아침에 날개를 펴고 하늘을 날아 인도 캘커타 공항에 도착했다. 인도 특유의 쾌케한 내음이 나를 반겨주며 그때 그리움의 향수를 다시 떠오르게 했다. 그 설래 임도 잠시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여행 가방이 싱가폴 항공기에서 잠수를 해버렸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내가 서울을 떠나올 때 내 자신이 이곳에서 그냥 잠수할 생각했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여행 가방이 먼저 잠수를 한 것이다. 아마 주인의 마음을 미리 알아차린 것이다. 

공항 직원한테 신고하면서 생각하니 웃음밖에 나오지 않았다. 인도 공항 도착부터 이런 일이 생길 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그 가방 속에는 가장 중요한 소지품인 스승님께서 저에게 주신 뜻 깊은 옷과 속옷이 들어있었는데 말이다.

아쉬람 도착에서부터 속옷을 구걸해야 했으므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곳은 먼지가 많은 곳이라서 겉옷 또한 매일 같이 갈아입어야 하는데도 그럴 수 가 없어서 일주일 수행코스 동안 내내 겉옷을 갈아입을 수가 없었다. 엎친 데 덮친다고 상황이 불리하게만 되어가는 것이 아닌가. 몸에 병이 난 것이다. 온몸이 부어오르고 뼈마디부터 온몸에 까지 통증과 오한이 났다.

이런 상태를 보고 이곳 아쉬람 닥터는 건강상태가 매우 심각하니 수행코스를 중단하라고 권유 했다. 이곳 아쉬람에선 닥터의 소견이 곧 결정을 짓는 일이기 때문에 그에 말에 따라야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죽더라도 스승님 곁에서 죽으리라 생각하고는 7일간의 "Sat Chandi Mahayajna 2004"수행코스를 이어나갔다. 이 수행코스는 세계적으로 싸띠아난다의 만 여명의 제자들이 참가하는 전통 탄트릭 수행코스이다. 마지막 날에는 설사가 시작 되면서 혈변과 하혈 그리고 감기까지 겹쳐 몸은 점점 체력을 잃어갔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스승님과 함께하는 것만이 나의 전부였기 때문이다.  스승님과 함께 하는 이 시간을 내 얼마나 오랫동안 갈망하면서 기다려 왔던가. 이 몸이 어찌되든 그것은 작고 사소한 것이었다.

이 과정을 다 마치고 나니 다시 스승님께서 처음으로 특별한 탄트릭(밀교)"Tattwa Shuddhi Sadana"수행코스를 외국인 제자 130명의 제자들에게 7일간 열어 주셨다.

두 번째 코스가 끝나는 날에야 온 몸의 통증과 증상이 멈췄다. 하열과 설사에 육신의 기력은 쇠퇴하였으나 마음의 상쾌함과 잔잔한 평화를 느끼는 감정을 느끼었다. 이러한 나의 마음을 글로 다 표현하기란 내 언어가 너무 부족하다.

박티의 행복은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다. 내가 작아지고 작아져서 저절로 사라져 버리는 그 자리인 것이다. 에고가 다하는 그 자리에서 본성만이 남아 신과 스승과 함께하는 것이다. 역시 인도는 신의 나라이며 모든 신들의 축복이 함께하는 나라임에 틀림없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특별한 스승님의 축복에 온 몸이 기쁨으로 충만했다. 그 순간은 내가 곧 평화였다. 스승님과 함께하는 이곳 인도에서는 나와 평화가 하나가 된 것이다. 그런 축복받는 날에 또 하나의 다행한 일이 일어났다. 되는 것도 없고 안 되는 것도 없는 인도이기에 그저 그러려니 생각하고 포기했던 싱가폴 항공회사에서 잠수를 했던 그 가방이 현지에 7일 만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렇게 기쁘고 기쁜 일이 어디에 또 있겠는가. 그때의 내가 머물고 있는 인도 모든 여행사 아쉬람에서는 20일간이나 전화 불통에다가 국제전화도 되지 않았다. 다른 나라는 그 후 잘 되었는데 어찌된 일인지 한국과는 전화 연결이 안 되었다. 전화통화가 안 되어서 일정에 약간의 차질이 생겼지만 덕분에 3일 간의 바라나시 여행길을 오랜 벗과 함께 지내며 바라나시강가에서 배를 타면서 물결 따라 마음이 흐르는 곳으로 일체를 내맡김의 평화 속에서 두 번째의 천국을 경험했다.

"모든 것은 신의 뜻대로 저절로 되어간다." 이곳 인도에서는 그렇다. 이것이 인도를 이해하고 함께 할 수 있는 내맡김의 생각인 듯 하다. 


귀국 전에야 인터넷 뉴스를 보고서 ‘쓰나미’로 인한 재해를 알게 되었다.

인간의 무력함과 오만함이 이토록 엄청난 재앙을 불러온 것이다. 먼 나라 일이 아니라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는 재앙의 작은 경고인 것이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작고 미비한 것인지를 알고 겸손함을 배워야 한다. 모든 현상은 조금도 더하고 덜할 것도 없이 그대로 순리인 것이다.

무위자연이라 할까, 모든 것은 그러한 인연으로 생멸하는 것뿐 아니겠는가.

자연에서 멀어진 인류의 재앙에 희생된 많은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편안 하소서 !.  편안 하소서 !. 그들 자신의 신과 함께 편안 하소서 !"


“당신의 기쁨이 저의 기쁨이요

당신의 희망이 저의 희망입니다.

오직 당신이 계심으로 저 또한 살아 갈 수 있습니다.“


“당신 속에 내가 있고

내 속에 당신이 있으면

나는 누구를 사랑하는 것입니까?”



5-6 천년 전 고대의 인도에서 기원한 요가는 오랜 시간을 두고 위대한 수행이 이룩한 지혜의 열매기에 그 효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긴장된 몸을 유연하게 풀러주는 과정에서 심신의 휴식과 안정을 유도하고 마음의 고요를 체험하게 다. 그러면서 내적 평온의 상태에서 본래의 자기 모습을 볼 수 있다. 거친 환경 속에서 허약한 몸과 긴장된 마음으로 길을 찾는 현대인에게 육체적, 정신적, 영혼을 고루 발달시켜 조화에 이르게 하는 요가야말로 최고의 과학, 최상의 예방법이자 치료법이라 할 수 있다.

요가는 누가 하는가? 누구나 요가를 할 수 있다. 특별한 장비도 , 옷도 필요 없다.

이번 인도 수행 길은 참 나를 다시 찾는 시간이 되었다.

자기의 삶을 가꾸는 하루는 아름다운 모습이다.


  인도 수행을 다녀와서